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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리더쉽, 유비 리더쉽경영경제뉴스 2021. 8. 17. 08:00
소통하고 경청하는 리더, 이순신
이순신 장군은 한국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영화 <명량>(2014)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그의 리더십이 주목받기도 했다.
승리가 불투명했던 여러 전투에서 물러서지 않고, 부하들을 이끌어 압도적인 승리를 이뤄낸 그의 모습에서 우리가 원하는 리더를 발견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에 머무는 동안 ‘운주당(運籌堂)’을 지었는데, 그곳은 그의 개인 집무실이자 여러 장수와 전쟁에 대해 논의하던 곳이었다. 참모진들과 많은 의견을 나눴을 뿐만 아니 라 해당 지역에서 태어난 병사는 물론 민간인까지 운주당에 드나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술과 음식을 대접했고 그들이 건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공은 날마다 포구의 남녀 백성을 좌수영 뜰에 모아놓고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평복을 입고 격의 없이 즐기면서 고기를 잡고 조개를 캐면서 지나다닌 곳, 물이 소용돌이쳐서 배가 뒤집히는 곳, 암초가 있어 배가 부서지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은 하나 하나 자세히 듣고 기억했다가 다음 날 아침 직접 현장에 가서 살폈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후퇴하는 척 적들을 험지로 유인해 승리했다.”
(조선 시대의 학자 성대중의 야사 <청성잡기> 中)
이처럼 그는 대화와 경청을 통해, 해안의 물길과 지형을 완벽히 꿰뚫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학익진(鶴翼陣) 같은 전략을 창조적으로 펼칠 수 있었다. 명량대첩, 한산도대첩 등 수많은 전투에 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왜선을 물리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자신을 낮추고 유능한 인재를 곁에 둔 리더, 유비
중국 역사상 많은 영웅호걸이 배출된 시대인 위, 촉, 오 세 나라의 역사를 그린 <삼국지>. 그중에서도 유비에게는 다른 주인공들과는 다른 특별한 ‘무엇인가’가 존재해, 오래도록 본받을만한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핏줄만 황족이었던 유비의 집안은 가난했다. 권력과 부를 겸비한 환관 집안의 양아들이었던 조조나, 아버지와 형을 이어 3대에 걸쳐 세력을 구축한 손권에 비하면 유비는 아무것도 없었다.
군사 전략에 밝지 못해 숱한 전투를 치렀지만 패배를 맛보기 일 쑤였고, 정치적으로는 멀리 내다보는 안목과 식견이 부족했다. 하지만 유비는 뛰어난 사람을 품어 활용하는 것에 누구보다 능했다. 그는 나이, 신분, 부, 출신 지역 등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다.
그 예로 모두가 탐내던 전략가 제갈량을 얻은 ‘삼고초려’ 일화가 있다. 당시 유비는 47세로 27세의 제갈량보다 무려 스무 살이나 연상이었다. 그런데도 유비는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 머리를 굽혔는데, 마지막 세 번째에는 낮잠을 자는 제갈량이 일어나 이 일어날 때까 지 밖에서 서서 기다렸다.
그런 유비의 노력이 있어 제갈량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유비는 자신이 필요한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작은 이익이나 체면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자존감 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을 굽혀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유비는 인재가 재주와 능력을 발휘할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줬으며,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인재에 목마르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 덕분에 관우, 장비, 제갈량, 조운, 장송, 서서 등 당시 내로라하던 최고의 인재들이 유비를 믿고 따랐으며, 그에게 충직했다.
-에디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