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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꿈, 부(富)란 무엇인가?사회문화 연구보고서 2021. 8. 27. 08:00
부(富)란 무엇인가?
부(富)는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대상이다. 돈이 부의 바탕이다. 돈보다 더한 가치들이 있지만 많은 이들이 돈 때문에 울고 웃는다. 돈과 함께 겪는 곡절과 희로애락으로 이루어지는 게 평범한 이들의 인생이다.
돈이 우리의 기분을 쥐고 흔들며, 인생행로를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강한 권력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을지 모르지만, 돈이 없어서 비참해지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보험이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돈 많은 사람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행운이다. 부자 되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렵다.무엇이 ‘부’인가? 먼저 물어야 한다.
부자란 우선 많은 재화를 소유하는 사람이다. 이때 부와 소유는 동일시된다. 물질적 삶의 기초를 이루는 자본, 토지, 집, 차, 재산권 따위를 모아서 재화라고 한다. 이 재화는 갈망하는 것을 사들여 쓰고 누리는 권한을 키운다.
재화가 많은 사람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고 다양한 권한을 누릴 수 있는데, 즉 먹고 마시고 쉬는 것 같은 기본적인 욕구 충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체의 안전과 아름다움의 도모, 심미적 취향의 만족, 자기표현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돈이 많다면 사회적 활동의 폭은 넓어지고 더 많은 분야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다.
돈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화폐 기반 사회에서 돈은 항상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이 권한이 주는 매력 때문에 사람들은 한사코 돈을 거머쥐고 부자 반열에 들어서려는 것이다.
부자는 돈 많은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부자들이 더 많은 행복을 누린다는 기대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부자들은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차를 타며, 더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윤택한 삶을 산다.
돈 많은 이들이 사치를 누리며 호사스럽게 사는 반면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들은 불행과 비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만성적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채를 지고, 그 빚에 허덕인다. 부자가 더 쾌적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는 데 반해 가난한 이들은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살고, 최저 생계비를 벌기 위해 더 험하고 고된 노동에 내몰린다.
이들은 당연히 누추하고 볼품 없으며 고달픈 삶을 산다. 그러니 누구나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부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버는 일에 제 모든 것을 다 바친다. 그런가 하면 적게 벌고 자족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최소한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 말고는 더 벌려는 욕심을 내려놓는다. 어떤 이에게는 돈보다 예술, 지식, 경험을, 혹은 가족, 종교, 우정이 더 가치 있는 것이다. 돈이 악과 타락의 근원이라고 말하는가 하는 반면 돈이 최고의 가치고, 돈이 없는 것이야말로 악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돈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쇼펜하우어란 독일의 철학자는 “돈은 추상적인 행복이다. 현실에서 더는 구체적인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돈에 모든 것을 바친다.”라고 꼬집지만, 보 데릭이란 사람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어디에서 파는지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가? 볼테르가 한마디 거드는데,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돈이 불행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분명하다.”
돈도 좋고, 부도 좋다. 부자를 공연히 미워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부가 정당한 소득에 의한 것이라면 더더군다나 그렇다. 다만 부는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혼자 움켜쥐고 있다면 그 돈과 부는 가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의 그늘에 있는 이들, 즉 경제적 약자들과 소외된 소수자들을 위해 베풀어질 때 그 돈과 부는 윤리적인 힘으로 작동하며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꾼다. 그게 부를 가진자의 사회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부자가 된 것은 개인의 노력과 성실함의 결실이겠지만 알게 모르게 공동체도 기여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돈은 돌고 도는 공공재다. 수중에 들어온 돈은 잠시 머물다가 달아난다. 부를 사유화(私有化)하지 마라. 그것을 윤리적인 방식으로 써라. 그래야만 비로소 지속할 수 있는 행복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부(富)를 가치있게 쓰는 법
경주 최 부자 집은 17세기 경주에 터를 잡은 파시조(派始祖) 최진립에서 시작해 삼백 년 12대를 이어오며 만석 재산을 유지하고 대물림한 가문이다. 1대 부자 최국선은 신해년(1671년)에 큰 흉년이 들자 “사람들이 굶어 죽는 판에 나 혼자 재물을 지켜 무엇하겠느냐.”며 곳간을 열어 굶주리는 이웃들에게 식량을 베푼다.그 후손은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 일어서서 싸우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 운동하는데 자금을 댔다. 탐욕을 삼가고 사치를 금하며, 재산을 이웃과 나누는 일을 주저하지 않은 최씨 가문의 피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녹아 흐른다. 그들은 부의 권한을 누리기만 하지 않고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기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세 해까지 무명옷을 입으라는 등등의 지침을, 최 씨 가문의 금과옥조로 지키며 살아온다.
그 후손은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지키며, 욕심내지 않고 의로움에 굳셈을 보인다. 이런 후손의 처신과 몸가짐은 존경받을 만하다. 이들은 부를 개인의 안녕과 사치를 누리는 데 쓰지 않고, 더 가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아낌없이 썼기에 인심을 잃지 않고, 이웃의 존경을 받았다.
돈을 가졌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고, 부자가 다 존경을 받는 것 같지도 않다. 행복은 돈을 소유함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아무리 많은 재화를 쌓았더라도 중병에 걸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돈 욕심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돈은 생계수단이요, 자기실현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의 분별없이 돈을 향해 달려드는 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게 몰이성적이고 반윤리적인 수단으로 돈을 모았다면 존경받을 수가 없다.
삿된 탐욕과 제 잇속만을 추구한 결과가 아니라 땀 흘려 수고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일군 부만이 가치가 있다. 부를 일구고 유지하는 데도 지키고 따라야 할 법도가 있다. 경주 최 부자 집의 사례는 부자가 자신의 재화를 어떻게 써야 공동체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